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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플/칼럼]황호택
  보도지 : 동아    보도날짜 : 2004-01-27
   a.jpg (9.7K), Down : 8, 2008-01-22 15:19:25

" 양국간 높은 벽 때문에 많은 사람이 희생됐지만 2001년 수천만명 일본인은 한 명 한국인이 치른 값진 희생 때문에 감동받아 슬퍼하고 있습니다.
같은 일본인이라고 하더라도 전동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접근할 때 철로에 떨어진 취객을 위해 몸을 던질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1, 2초도 안 돼 몸을 날렸습니다. 마치 가엾은 인간들을 구제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와 같이 말입니다. "

3년 전 일본 신세대 작가 아스나 미즈호가 이수현을 추모하며 쓴 글이다.

▷미즈호씨는 이 글에서 당신의 아들은 하늘나라로 갔지만 많은 일본인의 가슴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아들을 잃은 부모를 위로했다. 작가의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었다.
이씨가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숨진 지 3년이 지났건만 부산시립공원 이씨 묘소에는 일본인들이 놓고 가는 추모의 꽃이 떨어질 틈이 없다. 종이학 1000마리를 담은 유리상자나 정성스럽게 다듬은 목공예품을 놓고 간 일본인도 있었다.

▷도시화 산업화와 함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 이웃과의 단절이다. 일본 사회에서는 길거리에서 누가 강도를 당하거나 죽어 가도 못 본 척하고 지나치는 개인주의의 만연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인도 아닌 제3국인의 의거가 메마른 일본 사회에 던진 감동과 충격은 더없이 컸다.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 청년의 의거에서 배워야 한다는 국민교육의 메시지가 일본 언론에 넘쳐 흘렀다.

▷일본에 고통을 당했던 우리 사회 일각에는 일본의 추모열기를 순수하게 보지 않는 시각도 있는 듯하다.
내셔널리즘과 휴머니즘의 감상적 결탁이라고 꼬집는 논평이 그런 예다.
그러나 달려오는 전동차 앞에서 취객을 구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몸을 던진 그에게는 민족을 생각할 찰나도 없었을 것이다. 위험에 처한 인간을 살려야 한다는 휴머니즘의 정신기제가 순간적으로 작동했을 뿐이다.
거기에 인종이나 민족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의인(義人) 이수현에게서 휴머니즘이 내셔널리즘에 우선하는 가치라는 교훈을 함께 배워야 한다.

이수현 3주기는 그렇게 기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