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이수현님소개 > 기사스크랩
   
  勇氣が友好生む (용기가 우호를 만들다)
  보도지 : 마이니치    보도날짜 : 2002-09-22
** 이 글은 일본 마이니치 신문(每日新聞)에 난 기사를 번역하였습니다. **

- 2002 아시아게임 대회중 -

JR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작년 1월,
홈에서 추락한 남성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한국인유학생..이수현군(당시 26세)의 용기있는 행동에 일본전체가 칭찬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출생지 부산에 있는 묘소와 추모비에는 지금까지 그 유덕을 기리기위하여 방문하는 일본인이 끊이질 않는다.
부산의 번화가 서면에서 약 4km 산간에 위치한 어린이대공원.
유원지와 콘서트홀등을 구비하고 있어 일년내내 사람들로 활기차다.
공원내에는 이수현군의 추모비가 작년 5월에 세워졌다.
오석으로 제작, 높이 2.3M, 폭 2.6M의 추모비 .
"순간을 던져 영원을 얻은 그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들의 가슴속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 비문내용중 -
이 추모비에는 이군의 초상과 추도문이 새겨져있다.

부산시 금정구 영락공원에는 통상의 4배의 공간을 사용해 묘소가 만들어졌다.
추모비와 묘소의 조성을 담당한 부산시직원이 방영진씨(39세)는 "일한은 좋지않은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관계인데, 일본인을 구하려고 했던 행동에 국경과 국민감정을 넘은 인류애를 느꼈다. 市가 이 정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 하였다.

부산 연제구 생가에는 사고이후 일본에서 약 2000통의 편지가 보내져왔다.
묘소 참배객이 오면 아버지이신 이성대씨가 묘를 안내한다.
"아직도 아들이 왜 그런 위험한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수가 없다."며 슬픈 표정을 띄운 뒤 "아마..구하고 싶다는 일심이었겠지요...사고후,일본에서 한국까지 사비를 들여와서 저희를 방문하여 격려해주시는 일본인들에 대해 무척 놀랐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닙니다"라며 표정을 부드럽게 했다.
사고가 난후 약 1년 반.. 지금도 일본에서 오는 편지는 한주에 2~3통이며 묘참배객은 한달에 수명은 방문하고 있다.

올해 1월.. 일한 양국으로부터 가족에게 보내져 온 기부금등을 토대로 일본에서는 장학회가 창설됐으며 일본에 유학온 아시아학생들에게 다음달부터 장학금이 수여된다. 이군의 부모님은 지금까지 1억3천만원(약1300만엔)을 기탁했다. 8월말에는 가족들이 이수현씨의 추모사이트도 만들었다.

「일한의 가교가 되고싶다」던 이수현씨의 뜻은 바다를 넘어 착실히 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