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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이어 남편 떠나보낸 ‘의인 이수현’ 어머니 “한·일 민간 가교 이어갈 것”
  보도지 : 중앙    보도날짜 : 2019-03-27
“남편이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유언도 못 하셨죠. 수현이가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게 이제 제가 나서서 한·일 민간 가교 구실을 해야죠.”


지난 26일 ‘한국인 의인’ 이수현(당시 26)씨의 어머니 신윤찬(70)씨가 슬픔을 억누르며 겨우 꺼낸 한마디다. 이날은 신씨의 남편이자 이씨의 아버지인 이성대(80)씨가 아들 곁으로 떠난 지 5일째 되던 날이다.

신씨는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 몰랐다”며 “지난 1월 뇌경색 증세를 보였을 때 약물치료만 할 게 아니라 수술까지 해야 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이씨는 자택에서 약물치료를 받다 지난 18일 뇌출혈로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지난 21일 별세했다.


이씨는 아들 수현 씨가 2001년 일본 도쿄의 기차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 숨지자 이듬해 아들 이름을 딴 ‘LSH아시아장학회’를 설립하고 명예회장을 맡아 한·일간 민간 가교 구실을 해왔다. 이씨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일본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인 ‘욱일쌍광장’을 받았다. 이씨는 지난 17년 동안 한 번도 빠짐 없이 일본을 방문해 일본에서 공부하는 아시아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2017년 기준 18개국 844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2001년 일본인들이 보내준 후원금 1억원과 그 이후 들어온 후원금 전부를 장학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는 매년 1월 진행되는 아들 추모식에 아내와 함께 참석했다.


신씨는 “지난 1월 남편이 뇌출혈 증세를 보여 처음으로 아들 추모식에 혼자 참석했다. 굉장히 힘들었다”며 “오는 10월 있을 장학금 전달식에도 혼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남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신씨가 남편과 함께해온 장학회 일에 애착을 가지는 것은 아들이 사람들에게 잊혀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서다. 그는 “수현이의 의인 정신이 잊히는 건 저에겐 사형선고 같은 것”이라며 “그동안 수현이를 잊지 않고 추모해주는 일본인과 우리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고노 다로(河野太?) 일본 외무상이 조의를 표한 것 역시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그이기에 최근 나빠진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우울감이 몰려온다고 했다. 신씨는 “2017년 일본 총영사관 앞에 부산 소녀상이 설치됐을 때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 일본 총영사가 힘들어 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며 “한국과 일본은 경제·문화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다. 일본이 보다 대범하게 결단을 내려 한·일 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신씨는 의협심이 뛰어났던 아들이 걱정돼 수현 씨가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안위를 걱정하며 절에서 기도했다고 한다. 수현 씨가 숨진 뒤에는 방의 유품을 그대로 둔 채 매일 새벽 명복을 비는 기도를 하고 있다. 아들이 보고 싶을 때는 묘지가 있는 영락공원을 찾기도 한다. 신씨는 “부산시의 배려로 남편이 아들 옆에 나란히 묻힐 수 있게 됐다”며 “힘들 때마다 찾아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신씨는 아들과 남편의 뜻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수현이가 유학 도중 집에 왔을 때 ‘한·일 우호증진의 일인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면서 “남편이 그랬듯 아들 뜻을 잇기 위해 LSH아시아장학회에서 명예회장직을 권유하면 수락하고, 즐겁게 한·일간을 잇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