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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랭한 한일관계 무색…2002년부터 이어진 日 ‘의인 이수현’ 추모식
  보도지 : 헤럴드    보도날짜 : 2019-01-26
   헤럴드경제2019126.jpg (129.7K), Down : 0, 2019-04-02 23:21:19

26일 오후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일본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 씨의 어머니 신윤찬 씨가 두 손 모아 아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6일 오후 5시께 JR동일본철도 관할의 도쿄 신오쿠보(新大久)역에서 한 의인(義人)을 이수현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2001년 당시 고려대생으로 도쿄 아카몬카이(赤門會) 일본어학교에서 공부하던 이수현(당시 26세)은 이날 오후 7시 15분께 신오쿠보역 승강장에서 전철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선로로 추락한 술 취한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선로로 뛰어 들었다. 다른 일본인 한 명도 함께 구하기에 나섰지만 불행히도 전동차가 이들을 덮치는 바람에 세 사람이 숨졌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역사적으로 갈등의 뿌리가 깊은 한국인이 일본인을 구했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카몬카이 일본어학교에서 열린 당시 추도식에 일본 정계를 이끌던 모리 요시로 총리와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을 비롯한 1000명 넘는 일본인이 참석해 양국 간 가교역할을 한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도 “고인의 살신성인 희생정신이 한일 양국 국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했다.


많은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그대로 살아 있는 고(故) 이수현 씨를 위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고인의 이름을 딴 LSH 아시아장학회가 출범해 운영되고 있다. LSH장학회가 2017년 기준으로 장학금 혜택을 받은 인원은 주로 일본에서 유학 중인 18개국 844명에 이른다.


이날 헌화식으로 진행된 추모 행사는 조촐했지만 엄숙하게 치러졌다. 평일에도 하루 12만 명 이상이 드나드는 신오쿠보역은 승강장은 주말을 맞아 더 붐볐다.


하지만 동일본철도 측은 기림판 앞에 헌화대를 마련한 뒤 신오쿠보역 직원들을 대거 투입해 승객을 통제하는 등 고인의 어머니인 신윤찬(70) 씨가 아들을 추모하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건강문제로 일본에 함께 오지 못한 고인의 아버지를 대신해 헌화에 나선 신 씨는 사고가 났던 승강장을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 등과 둘러보고는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신주쿠 한국문화원으로 이동해 ‘의인’의 죽음 이후 남겨진 주변 사람 얘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가교(懸橋)’를 일본인 300여 명과 함께 관람한 신 씨는 서면 인사말을 통해 “현재의 한·일 관계가 엄혹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활발하게 교류해 마음 잇는 일을 소중히 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