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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이수현씨
  보도지 : 조선    보도날짜 : 2001-01-30
   a.jpg (15.0K), Down : 19, 2008-01-22 13:30:15

30일 오후4시20분 부산 김해공항 입국장. 일본 도쿄 전철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27)씨의 영정이 외삼촌 신명교(44)씨 품에 안겨 들어왔고, 이어 이씨 유해함이 아버지 이성대(62)씨 손에 들려 귀국했다.

공항에는 이씨 여동생 수진(25)씨와 고모 등 가족이 나와 눈물을 흘렸고, 안상영 부산시장을 비롯한 부산시 관계자, 이씨의 모교 고려대의 임우영 부총장과 학생 40여명 등 100여명이 나와 애도했다.

이씨의 입학동기인 박형선(朴亨善·27)씨는 추도사에서 "학형의 피는 이 나라 이 땅에 인간생명 존엄성을 다시금 상기시킨,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할 실천하는 행동이었고 살신성인의 정신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이, 또 뚜렷이 아로새겼다"며 명복을 빌었다.

공항에 나온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씨를 의사자로 선정하고 유가족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했다.

이씨의 유해는 고려대측에서 마련한 노제를 지내고 부산 연제구 연산9동 이씨 자택을 들른 뒤 인근 정수사(주지 원광스님)에 안치됐다.

이씨 부모는 이날 일본을 떠나기 전, 이씨와 함께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세키네 시로(관근사랑·47·카메라맨)씨의 어머니 지즈코(천학자·76)씨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어머니 신윤찬씨는 『아드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아드님 몫까지 오래 사시라』고 말했고, 지즈코씨는 『일부러 전화 줘 고맙다』고 울먹였다. 모리 요시로(삼희랑) 일본 총리는 “한일 양국의 가교가 된 이군의 명복을 빌며 유족과 한국민에게 끝없는 경의를 표한다”는 메시지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냈다.

한편 일본 언론들은 이날 이씨가 전동차에 치여 숨진 일본 전철역에 문제점이 많았다고 집중보도했다.

사고역인 신오쿠보역에는 레일 옆 승강장 밑에 홈처럼 파여있는 「긴급대피지역」이 건축자재로 막혀 있었으며, 옆 선로와의 사이에 철판 벽이 있어 그 쪽으로도 피할 수 없었다는 것.

사람이나 무거운 물건이 선로에 떨어질 경우 자동 감지해 전동차에 브레이크를 거는 「비상 정지 안전판」도 선로 바닥에 설치되지 않았으며, 전동차가 규정속도를 지키지 않고 과속했다는 목격자 증언도 실었다. 또 취객이 비틀거리며 들어와 술을 사서 마시고 선로에 떨어질 때까지 이를 제지한 역무원이 없었다는 점도 지적됐다.

행정자치부는 30일 이수현씨에게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순위의 훈장인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또한 일본 경시청은 경찰관 직무에 협력한 사람이 재해를 당한 경우 지급되는 보상금 성격의 「급부금」을 1952년 제도 창설이래 처음으로 외국인인 이씨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급부금에는 연금과 장례보조비, 경시총감 조위금 등이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