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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
  보도지 : 동아    보도날짜 : 2001-01-28
   a.jpg (9.5K), Down : 78, 2008-01-22 13:27:16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26일 숨진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李秀賢·26)씨의 의로운 죽음이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8일 오후 6시 이씨가 다니던 도쿄(東京) 아라카와(荒川)구 아카몬카이(赤門會) 일본어학교에 마련된 빈소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한국인 유학생과 학교 관계자 200여명이 찾아와 조문했다.

▽추도식〓추도식에 참석한 학생들은 “만능 스포츠맨에다 남을 돕기를 좋아하던 그가 이렇게 쉽게 우리 곁을 떠날 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비보를 전해 듣고 일본에 건너온 이씨의 부모, 이성대(李盛大·62) 신윤찬(辛閏贊·50)씨는 제단 옆에서 조문객을 맞으며 울음을 참았다.

이날 일본 정부 대변인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과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중의원 의원도 찾아와 조문했다. 후쿠다 관방장관은 “일본정부를 대신해 사과의 뜻을 전한다”면서 “이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한일 우호 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나카 의원은 “이씨와 동갑내기인 막내아들이 현장을 목격하고 출장중이던 나에게 울먹이며 전화를 했었다”면서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며 고인을 기렸다.

도쿄 경시청은 29일 오전 이씨에게 경시총감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고 내각도 일본 정부를 대신해 이씨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상을 수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학교측은 일본 내 240여개 일본어 학원을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또 전철 회사의 과실이 인정되면 유족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메일을 일본 외무성에 보냈다.

아버지 이씨는 “의롭게 죽어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남매밖에 없어 아들인 수현이를 믿었는데…”라며 울음을 삼켰다. 그는 또 “수현이 증조부가 일본에서 숨지고 할아버지는 징용으로 일본 탄광에서 노동을 한데다 나는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 여섯살까지 살았다”며 “이제 수현이가 일본에서 숨지니 4대가 일본과 인연을 맺은 셈”이라고 말했다.

영결식은 29일 정오에 열리며 이씨의 유해는 화장된다. 유족들은 이씨의 유골을 들고 29일 오후 이씨가 숨진 신오쿠보(新大久保)역을 찾아가 노제를 지내고 역장으로부터 사고경위에 대해 설명을 들을 예정이다. 유족들은 30일 오후 비행기편으로 부산으로 돌아가 49재를 지낸 뒤 이씨의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조문〓이씨가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국내외에서 추모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김종우씨(29)는 “한국의 4000만명, 일본의 1억2000만명, 그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당신은 해냈다”고 추모했다. 한 30대 남성은 “신문기사를 보고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며 “주인 잃은 홈페이지는 우리가 지키겠다”는 글을 남겼다. 서울에서 일본어학원 강사로 일한다는 시노미야(27)씨는 “내가 사고현장에 있었다면 가만 있었을 것”이라며 “부끄러운 생각이 앞선다”고 적었다. 애필(30)이라는 미국인 남성도 “당신의 육신은 사라지지만 당신의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호연’이라는 학생은 “당신은 정말로 아름다운, 닮고 싶은 청년입니다”라고 추모했으며 박상복씨(50)는 “강재구 소령 같은 살신성인의 표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줬다”고 적었다. 윤호윤씨는 “기차 안에서 신문기사를 통해 고교 동창이던 너의 소식을 듣게 됐다”면서 “너의 모습과 행동, 말투를 기억하며 항상 너와 동창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기마”라고 적었다.

▽언론 보도〓이날 추도식에는 일본의 거의 모든 매스컴들이 몰려들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일본 신문들은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구하려고 목숨을 던졌던 두 사람”(아사히신문), “정의감 강했던 두 사람…일본과 한국을 맺으려던 기획은 꿈으로”(요미우리신문), “당신의 용기, 잊을 수 없습니다―이씨를 애도하는 목소리, 칭찬하는 목소리” 등으로 이씨의 죽음을 애석해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숨진 이씨와 세키네(關根)씨의 유족에게 조의금을 전하고 싶다는 연락이 많아 일단 신문사에서 접수하기로 했다”며 안내전화번호와 입금계좌를 게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