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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한장의 사진이야기
  글쓴이 : 홍준철     날짜 : 13-07-14 14:32     조회 : 2699    
   umma16.jpg (190.5K), Down : 5, 2013-07-14 14:32:17

이 한 장의 사진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러니까 2003년 여름, 동경의 오쿠보혼성합창단과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이 동경과 서울에서 합동연주를 할 때입니다. 2002년에 서울과 동경은 월드컵으로 국가적 교류를 하고난 다음해에 이제는 민간 교류가 필요하다는 이슈가 부각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의 합창을 전문으로 하는 음악이있는마을과 일본 합창을 매우 사랑하고 불렀던 오쿠보 혼성합창(지휘자 고 츠지마사유키)은 숙명처럼 만나 서로의 음악과 공통의 음악을 찾아 연주회를 열자는 협의를 하였습니다. 마침 NHK 라디오 방송이 특집으로 다루었고 기자들이 서울로 찾아와 인터뷰를 할 정도였습니다.

이 연주회에서는 양국의 공통의 관심사를 주제로 삼아 곡을 하나 만들어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고 마침 2001년 신오쿠보 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숨진 한국의 고 이수현님을 위한 추모곡을 만들자고 협의하여 '친구를 위하여 '라는 제목으로 이건용 선생님이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 작곡을 해주셨습니다.

동경에 간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은 일본 합창단과 첫 번 연습을 마치고 숙소로 가기위해 신오쿠보역에 갔지요. 그 곳에는 고 이수현님을 위한 추모동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 작았습니다. 합창단원들은 아무 말 없이 그 동판주변에 모였습니다. 묵념을 한 후 조용히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악보를 꺼냈습니다. 이곡이 무대에서 처음 불러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고인에게 처음 불러주어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습니다. 첫 음을 잡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없네.
그러니 친구여 함께 가세
저 선로를 넘어서 온갖 벽들을 넘어서
사람에게로 나에게로

단원들은 속울음을 참아가며 노래를 하였습니다. 그 노래가 노래다운 순간이었습니다. 음악이 있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리를 찾은 것이죠.

합창이 울려퍼지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실은 전철을 타고내리기위한 통로를 막고 있어서 병목현상이 일어난 것이죠) 급기야 역무원이 달려와 ' 사전 허락 없이 이러면 안 된다. '라는 제지를 받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노래를 다 불렀습니다. 그리곤 통역자에게 ' 고 이수현님은 철로에 뛰어 내려 사람을 살리기 전에 사전 허락을 받았느냐?' 라고 통역해 달라 하였지요. 그 역무원도, 일본 측 기획자도 우리의 돌출행동에 매우 당황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는 되었습니다.

고 이수현님이 숨진 장소도 보았습니다. 지상 플랫 홈으로 2~3초 달리면 피할 곳도 있어 7초 동안의 시간에 몸을 날리면 살수도 있는 공간으로 보였습니다. 끝내 취객을 살리려고 자신은 탈출하지 못한 것이죠, ' 바보, 바보..... 그냥 피하지....그냥 피해서 살지?.... 그래도 되는데... 바보 바보?...ㅠㅠㅠ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큰 빚을 진 것 같았습니다. 먹먹한 가슴으로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이 한 장의 사진을 볼 때마다 새롭게 어른거립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 지휘자 홍준철 hongjc58@naver.com